︎작가노트
2024.07.04.
신체로 겪은 순간에 두드러지는 감각을 더해 평면 매체에 다층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싶은 이미지에 대한 상상과 몸을 움직이며 만나는 풍경을 드로잉으로 기록해두고, 이에 색을 더해 장면을 만든다. 이같은 장면을 ‘몸을 통과하는 풍경들'이라 부른다.
작업의 시작은 드로잉이다. ‘어떠한’ 장면을 만들지 만났던 풍경들을 드로잉하며 구체화한다. 이 때문에 선적인 느낌이 중요하고 이를 어떻게 면으로 해석할 지를 고민한다. ‘어떠한'은 일종의 감각으로, 작업을 해나가며 초기의 풍경 이미지는 점점 중요하지 않게 되고 화면 안에서 ‘어떠한'을 잡아채는 게 중요해진다. 이 같은 화면을 구성하는 과정이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의 감각과 유사하다고 느껴 ‘캔버스 꾸미기’라 부르기도 한다.
완성된 화면 안의 이미지를 만화책 안의 장면 또는 영상의 일시정지라고 생각한다. 만화책을 펼치면 보이는 여러 이미지들이나 영상을 멈췄을 때의 이미지를 순간으로 여긴다. 장면은 ‘몸을 통과하는 풍경들'이자 순간으로, 이 풍경들이 모인 전시 공간은 이미지의 시공간이 펼쳐진 상태이자 ‘펼쳐진 풍경'이 된다.
2023.10.26. (회화 이미지의 추적)
작업 초기에는 비디오 게임에 등장하는 이펙트(도상)의 조형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리기 시작했다. 점차 작업을 해나가면서 이러한 관심의 출처가 어린 시절 부모님의 만화책 대여점에서 자주 보던 이미지들로부터 온 것을 알게 됐다. 이후 여러 도상 이미지를 수집하며 도상은 역할을 수행하는 일종의 약속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를테면 얼음의 이미지가 단순화됐을 때 육각형이고, 내리쬐는 빛의 이미지는 직선인 것 등이 그렇다. 이 같은 도상을 수집하거나 풍경을 관찰하며 형태를 만든다.
이러한 도상은 감각을 두드러지게 만든 형태이며, 캔버스 표면 위에서 그리고, 그린 것 위에 물감을 덮고 또 다시 그려내며 감각을 중첩시킨다. 이로써 경험했던 풍경과 만화적 도상들이 오버레이 되며 동사나 형용사를 이용하여 ‘어떠한 풍경’이라 이름 붙인다. 칸만화에서 인물과 대사로 이야기를 만든다면 나는 경험했던 풍경에 도상들을 연결하여 이미지를 만든다.
만화책을 펼치면 이미지보다 프레임, 이펙트(도상)와 같은 조형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프레임은 일종의 통로로 여러 세계로 향하는 창처럼 보이고, 이펙트는 단순한 조형이지만 프레임 사이를 가로지르며 창문 속 이미지들을 짜임새 있게 만든다. 이 때문에 회화와 전시 공간의 관계와 조형요소와 만화책의 관계는 닮아있다. 회화가 하나의 창이고 전시 공간이 이를 담아두는 확장된 페이지라면, 전시 공간은 감각을 모아둔 통로로서 기능한다.
2023.07.12. (회화와 공간에 대해서)
땅에 발을 딛고 움직이면서 만나는 풍경들을 사진이나 드로잉으로 기록해 두고 색을 더해 캔버스 안으로 들여온다. 이러한 작업을 ‘몸을 통과하는 풍경들’이라 부른다. 실제로 풍경 안에 있으면 다양한 자극으로부터 다층적인 감각들이 불러일으켜진다. 단순히 무언가를 보고 떠오르는 생각뿐 아니라 공간 안에 놓여있는 나의 몸을 인식하게 된다. 공간에 존재하는 나의 몸과 공간에 위치하는 회화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회화는 벽에 걸려 고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든 걸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회화가 장소에 특정한 이유를 가지고 걸릴 수 있을까 언제나 고민한다.
첫 번째 개인전《CUT IN: 몸을 통과하는 풍경들》에서는 경험한 하나의 장면 또는 풍경과 대응되는 그림들을 모아서 꾸렸다. 전시장의 중심에 원형의 설치 작업 <A Circle’s Travel>을 두고, 일반적이지 않은 높이에 몇몇 회화를 비치함으로써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풍경으로 만들었다. 회화작업 하나하나가 풍경의 어떠한 감각을 담고 있듯이, 설치 작업은 회화들과 공간을 가로지르며 전시 자체가 하나의 풍경이 되도록 하고, 관람자는 설치 작업을 매개로 전시를 경험한다. 회화가 풍경을 바라볼 때 작동되는 신체의 경험을 잡아둔 하나의 장면이라면, 설치 작업에서는 연속된 장면으로 보이도록 한다. 설치작업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행위는 전시장의 또 하나의 끼어듦이 되어 전시 공간을 작동시킨다.
두 번째 개인전《Flow sequence》는 풍경으로부터 불러일으켜지는 것들을 여러 프레임을 사용하여 보여주었다. 본래 한옥을 개조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방이 분리되어 있어, 전시장을 3구역으로 나누어서 장면을 만들었다. 또한 그림 하나하나가 있되, 풍경처럼 보였으면 해서 전시장 곳곳에 구를 비치해 시선을 유도했다.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출판작업을 병행하였는데 이는 첫 번째 개인전에서 발표했던 원형의 설치 작업을 책의 형태로 만든 것이다. 풍경들을 단순한 나열이 아닌 이야기로 꿰어내고 싶었기 때문에 주인공 동그라미를 등장시켰다. 《Flow sequence》에서 또한 이러한 생각이 바탕이 되어 공간과 회화, 구로 전시의 풍경이자 이야기를 만들었다.
회화가 위치하게 될 공간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장소 특정적인 회화가 가능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어떠한 풍경으로부터 느껴지는 감각이 다르듯이, 특정한 위치에 ‘설치된’ 회화를 상상한다. 나는 회화가 그곳에 있어야 할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싶고, 회화가 한 화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공간으로 확장되길 바란다.
2023.03.26.
‘풍경’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나는 ‘〇〇〇 풍경’을 그리고 나는 풍경을 ‘주인공이 없다‘는 뜻으로 여긴다. 어느 하나를 돋보이기 위해 힘이 실려 있지 않은 것, 나열되어 있거나 전체가 하나를 말하는 것을 생각하며 ’풍경‘을 그린다.
작업 초기에는 나에게 특별한 인상을 주는 풍경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작업을 지속하며 매 번 특별한 순간을 기다리기보단 자주 보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풍경에서 특별함과 상상을 더 많이 끌어내고 있다.
이런 생각도 해본다. 〇〇〇 풍경’에서 풍경을 지워내고 ‘〇〇〇’만을 남긴다면?
나는 감각을 그리고 있지만 감각만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 풍경이라는 말은 눈에 보이는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이 있지 않은 그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주인공이 등장한다면 더 이상 풍경이 아닐 것 같다.
2022.04.27.
경험한 공간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나는 땅에 발을 딛고 움직이며 시간 안에서 변화하는 풍경들을 마주한다. 공간은 멀찍이 마주했던 장면이기도 하고, 나를 둘러싼 세계이기도 하다. 공간에서 나는 몸을 움직임으로써 불연속적인 순간들을 마주하고, 이 순간들을 잡아챈다. 풍경에 놓인 몸은 빛, 바람, 소리 또는 스쳐 가는 생각이나 떠오르는 기억 같은 무형의 것들을 겪는다. 나는 이러한 다층적인 감각을 ‘끼어듦’이라 부른다.
풍경을 멀찍이 바라보거나 그 자체로 감각한다. 복잡하고 굴곡진 다차선도로, 바람에 흔들리는 풀더미 등, 공간과 공간의 일부가 된 형태들이 작동하고 있는 흐름을 따라가면 이리저리로 뻗거나 넘실거리는 힘을 발견한다. 이러한 힘들은 때로는 정확한 형상이 되기도 하고, 한없이 뻗고, 맴돌고, 흘러내리는 붓질이 되기도 한다.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공간에 놓여있는 나의 몸에 집중하게 된다. 바라보던 풍경 안으로 들어가면 불연속적이고 다층적인 감각들이 선명해진다. 비가시적인 순간들을 잡아채 형상을 만들고, 화면 안에 배치한다. 몸을 통과하고 끼어드는 모든 힘들은 붓질을 촉발하는 단서로서 작동한다.
경험하는 수많은 공간 중 작업으로 이어지는 것은 ‘끼어듦’이 많이 발생하는 공간이다. 공간들은 같은 형태를 갖거나, 같은 감각을 불러일으키지 않기에, 공간과 마주하는 순간의 감각에 집중하여 힘, 방향, 흐름 등을 찾아낸다. 실제로 만난 풍경을 사진이나 드로잉으로 기록해두고, 이를 다시 드로잉 또는 캔버스 화면으로 번역한다. 공간으로부터 느껴지는 흐름과 생각을 완전히 단절시키며 끼어드는 감각들을 단서삼아 평면 위에 환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